이순신 장군의 업적 중 한산도 대첩을 다룬 영화 한산: 용의 출현, 1592년 여름 한산도 앞바다, 압도적 승리가 절실히 필요한 조선의 운명을 결정할 해상 최고의 전투다. 이 전투에 대한 작전 준비과정과 승리포인트 및 한산도 대첩이 가진 의미를 되새겨 본다.
(한산: 용의 출현) 작전 준비
1592년 음력4월 13일 선조 25년,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약 16만 명의 군대를 이끌고 조선을 침략한다. 이 것이 임진왜란이었다. 일본군은 부산진과 동래성까지 장악한 후 한양까지 단숨에 정복하였고, 불과 20일 정도만에 한양은 왜군이 장악하게 된다. 그러면서 조선의 임금 선조는 피난을 가게 된다. 한편 일본군의 잔인한 살상이 이어지는 가운데, 육지에서의 패전은 계속되었지만 이순신 장군이 이끄는 조선의 수군은 여러 포구에서 일본 전함들을 차례로 격침시킨다. 이 전투로 인하여 일본군은 바다를 통한 보급로가 막히게 된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와키자카 야스하루에게 조선 수군을 전멸시키라고 명령한다. 와키자카 야스하루는 조선 침략 당시 용인 전투에서 대승을 거둔 맹장이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야스하루를 매우 신임하고 있었다. 당시 야스하루가 이끄는 정예함대는 견내량에 있었고, 이순신의 수군은 통영 당포에 주둔하고 있었다. 이순신은 적들을 괴멸시킬 작전으로 학익진을 구상하고 있었다. 마치 학의 날개처럼 펼쳐서 거대한 성벽을 만들어 엄청난 위압감을 적들이 느낄 수 있게 하고 싶었다. 그렇지만 학익진도 약점이 있었다. 그것은 적을 포위하다가 아군의 대열이 맞지 않으면 측면이 뚫리게 되어 적에게 후방이 노출된다. 또한 빠른 배로 돌진하는 일본 수군을 때를 맞추어 포격하지 못하면 백병전에 강한 일본군에 의해 아군이 위험해진다는 것이다. 또 다른 약점은 좁은 해역에서는 적을 포위하는 작전을 펼칠 수 없다는 것이다. 이순신은 이러한 약점들을 보완하기 위해 적들을 완전히 포위할 수 있는 충분한 판옥선을 확보 후 학익진을 쓰게 펼치게 된다. 평상시에는 일반작전을 유지하다가 전투가 시작되면 날개를 펼치는 것이다.
전투승리
이 작전은 조선 수군의 대열을 두껍게 하는 장점도 있었지만, 여러가지 면에서 좋은 점이 있었다. 먼저 앞열이 제자리에서 돌면서 전방, 측면에서 모두 포를 쏘고 빠지면 그다음 열이 교대하여 돌면서 포를 쐈다. 이는 전후좌우로 포격이 가능하고 배의 바닥이 넓고 평평한 파독선이라서 가능했던 전술이었다. 더구나 화력은 좋았지만 준비시간이 오래 걸렸던 조선 총통의 단점을 보완하기 위한 아주 지혜로운 전략이었다. 수없이 몰려오는 일본군들에게 조금의 틈도 주지 않고 교대하고, 포격을 가했던 조선수군은 두께가 얇았던 일본군의 전함들을 산산조각 내버렸다. 심한 조류와 바람에도 영향을 받지 않고 정상적인 작전을 펼치기 위해 당시 조선 수군들이 얼마나 강도 높은 훈련을 받았는지 생각해 볼 수 있는 부분이다. 그리고 속도를 높여 돌진하는 일본군들을 저지하기 위해 이순신은 거북선을 최전방에 세운다. 일본군들은 거북선을 복카이센이라고 불렀다. 학익진의 약점을 모두 해결한 이순신은 적들을 넓은 한산도 앞바다로 유인해야 하는 문제가 있었다. 조선 수군의 유인함대는 견내량에 정박해 있던 일본군을 도발하여 이끌어 내는 데 성공한다. 일본군은 조선수군의 작전을 크게 조심하지 않고 유인함대를 잡기 위해 돌격해 들어간다. 결국 일본함대는 넓은 한산도 앞바다가 까지 따라가게 되었다. 드디어 이순신은 외친다. "전군 출정하라". 엄청난 기세로 적들을 에워싼 조선수군은 적들의 배를 불태우고 사살하여 한순간에 전투를 끝내버렸다.
의미
이순신 장군이 중심이 되어 수많은 해상 전투에서 업적을 이룬 임진왜란 3대 대첩 중 하나로 불린다. 한산도 대첩은 일본 수군의 주력을 대부분 격파하여 바다를 통한 보급로를 막는 것과 동시에, 육상으로 진격하려던 일본군의 계획을 보기 좋게 좌절시켜 버렸다. 이 전투 이후부터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해상전투의 금지령을 선포하게 된다. 사실상 남해바다는 조선의 수군이 완전히 되찾게 되었다. 또한 한산도 대첩의 승리 소식이 각 지역에 퍼지게 되면서 이 소식을 듣고 힘을 얻게 된 의병들이 전국에서 일어나게 된다. 그리고 일본군의 육로에서의 진격이 멈추게 되는 효과도 가져오게 된다. 이것으로 보아 한산도 대첩은 단순히 한 번의 전투에서 승리한 것이 아니라, 임진왜란의 전반적인 판도를 뒤집게 된 전투였다. 한산도 대첩에서 크게 패한 야스하루는 무인도로 도망치게 되었다. 그리고 무인도에는 식량이 없어서 열흘 정도를 해초만 먹으며 뗏목을 만들어 겨우 탈출에 성공했다고 한다. 명량해전, 한산도 대첩에 이어서 노량해전을 주제로 한 영화가 개봉예정이라고 한다. 다음 영화는 얼마나 감동을 줄지, 얼마나 이순신 장군이 대단한 분인지 또다시 느낄 수 있는 기회가 빨리 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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